파프리카(2006, 15세 관람가, 90분)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파괴하며 픽션과 현실을 넘나든다.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자유로운 상상과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장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주는 곤 사토시 감독의 창의력은 사람들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표현하는 데에까지 지평을 넓힌다. 천재감독이라는 수식어가 상투적이지 않게 들리는 진정한 천재인 곤 사토시의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탈상식적 사고와 디테일한 표현의 매력은 영혼을 전율케 한다. 새롭다는 것은 상식적 사고를 전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식적 사고란 일상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상투적으로 반응하는 사고를 말한다.
이에 반해 탈상식적 사고는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만화가로 활동했던 곤 사토시의 독특한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졌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 2003년에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것은 2007년 12월이다. <파프리카>(2006)가 먼저 개봉을 했다. 곤 사토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시간성을 확대하는 모더니즘의 기법을 사용한다. 특히 <파프리카>는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자아분열’, ‘의식의 흐름’ 같은 모더니즘 코드가 바탕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 관객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파프리카>는 꿈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연구소를 배경으로 꿈을 탐색하는 ‘DC미니’라는 기계를 소재로 하여 꿈과 현실이 교차되면서 뒤섞이는 과정을 묘파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나오는 무의식의 상징요소가 실사 영화에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극점까지 구현된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몸속에 다른 사람이 합쳐졌다가 분리되는 도플갱어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현실공간과 꿈 공간이 뒤섞일 때, 바닥이 갈라져 푹 꺼져 들어가면서 또 다른 공간으로 이행되는 모습은 꿈속 장면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비주얼이다.
이 영화를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이 왜 새롭지 않은지를 알게 된다. <인셉션>의 상황은 이미 <파프리카>에서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곤 사토시의 작품세계는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허상을 조소하고 있다. 우리의 본질은 시간성을 초월하여 바로 머릿속에 담겨 있는 기억, 사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곤 사토시는 애니메이션으로 철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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