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일평생을 노동자와 핍박받는 자의 편에 서서 영상작업을 한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은 가히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비망록>(1990)을 비롯하여 <레이닝 스톤>(1993)이 모두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가 만든 <빵과 장미>(2000)같은 영화는 미국노동현장에 대한 리얼한 보고서로 노동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그리면서도 영화적 재미도 갖추고 있습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1920년대의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다룬 <랜드 앤 프리덤>(1995)을 떠올리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독립투사들이 처음에는 열심히 적과 싸우지만 결국 내분이 더 무서운 적이 되어 갈등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런던의 병원으로 떠나려던 젊은 의사 데미언(킬리언 머피)이 영국군이 죄없는 친구를 사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일랜드에 남아, 반군이 된 형 테디아 연인인 시니드 등과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우게 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데미언이 어떻게 점점 과격한 투사가 되는지의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주면서 관객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데미언은 영국군의 잔인한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 살아왔지만 자기편을 배신한 소년을 직접 처형하기도 하고, 조국의 이름으로 투쟁일선에서 싸우게 됩니다. 그러나 치열했던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이 영국과의 평화협상으로 일단락되자 아일랜드 사람들끼리 견해차로 서로 반목하게 되면서 영화는 점점 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줍니다. 가슴으로만 느꼈던 영화를 머리로 보게 만드는 켄 로치 감독의 솜씨는 과연 탁월합니다. 일부 자치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테디는 영국 군복을 입고 데미안과 동지들의 은신처를 수색하며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됩니다. 더 무서운 비극은 영국군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점에 감독이 주목함으로써 어떤 명목이든 전쟁은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보리밭과 전원 풍경을 떠올리게 되는 아일랜드에 어떤 피바람이 불었는지를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 DVD 찾아보기: (The)wind that shakes the barley SE [비디오녹화자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