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빈당 괴수 홍길동'에 숨결을 불어넣은 허균, 소설가 이병주의 붓끝에서 되살아나다. 태양에 바라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는 달빛 아래 비친 허균의 모습을 장대하고 웅장한 필치로 그려냈다.《관부연락선》,《지리산》,《정도전》,《정몽주》 등의 작품을 남긴 남성문학의 대가 이병주만큼 허균을 이토록 생생하고 감칠맛 나게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호부호형할 수 없었던 조선의 모든 서자들의 울분을 대변했던《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율도국을 세운다. 홍길동전에는 허균의 급진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충효를 목숨같이 여긴 유교를 받들었던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혁신세력’이 나올 수 있었을까. 등 떠밀려 치른 과거시험에서 허균은 문과에 급제하며, 병조좌랑, 황해도 도사, 삼척부사, 형조정랑, 병조정랑 등의 관직도 지냈다. 과거 급제의 비결은 타고난 문장력 덕분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누이인 허난설헌의 문집《난설헌집》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극찬을 받았다. 천재적 문학성을 가진 남매가 마주앉아 한시를 주고받으며 나누었을 수족지정(手足之情)을 소설을 통해 엿보는 재미도 크다.